전체 글 943

산초

골 깊은 개울, 미꾸라지 퉁가리 갈겨니 동사리 버들치 피라미천렵꾼 손에 잡혀 펄떡이는 물고기들, 어우러져 매운탕 냄비에 담기고붉은 양념 풀어 보글보글 끓여내도웬지 허전한 맛,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다가진 것 다 내어주어 몸뚱이는 흐물흐물붉은 국물 속에 형체 없이 흩어진 물고기들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상의 도리를 깨닫는 순간가슴속에 피어오르는 아련한 그리움애써 잡아 올린 물고기들의 푸른 생명력끓는 냄비 속에서 붉게 타오르다 재가 되어 흩어지고빈 그릇에 남은 것은 알싸한 산초 향뿐덧없는 세상사, 흐르는 강물처럼 덧없이 흘러간다

시습작 18:12:35

천년

천년의 바람천년의 세월을 베고 누운 고요한 산자락의 아득한 고백비우고 비워내도 끝없이 가슴을 채우는 아스라이 먼 영원의 숨결휘어져 굽어있는 늙은 소나무 가지 끝에 걸린 차가운 서리모진 풍파 속에서도 변치 않는 선비의 푸른 기개와 절개돌담길을 쓸고 가는 저물녘 가을바람의 헛헛한 소리떠나간 이의 온기를 찾아 헤매는 가슴 저린 그리움의 노래텅 빈 들판 위로 지는 저녁노을을 등지고 나부끼는 갈대밭살아온 날들의 슬픔을 털어내고 다가올 내일을 맞이하는 차분한 마음모든 것을 비워내어 비로소 세상의 모든 소리를 품어 안는 넉넉함거친 세파에 지친 영혼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대지의 영원한 위로바람으로 왔다가 다시 바람으로 돌아가는 삶의 고결한 순리비어있음으로 더욱 충만해지는 천년 세월의 거룩한 안식

시습작 11:14:09

푸른 품속

가을의 끝자락에서깊어가는 가을, 찬바람에 실려 온 묵직한 계절의 숨결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 너머로 아스라이 번지는 그리움아직 제 빛깔을 다 피우지 못한, 설익은 이파리 한 장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바람결에 몸을 맡긴 애달픈 몸짓마지막 불꽃을 사르듯 온 세상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보니 홀로 걷는 내 그림자가 유난히 길다굽이굽이 흘러 바다로 가는 저 강물처럼돌고 돌아 다시 만날 그 시절의 푸른 품속

시습작 2026.10.11